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드워드 4세 (문단 편집) === 위기와 반전 === 하지만 프랑스 왕 [[루이 11세]]의 고무와 지원을 받아 반격에 나선 리처드 네빌은 1469년 7월 에드워드 4세를 사로잡는 기염을 토했고 그대로 구금했다. 하지만 이미 에드워드 4세의 지지자들이 매우 많았으므로 오랫동안 가두진 못하고 그해 10월 석방했다. 네빌 가문의 힘을 줄이기로 결심한 에드워드는 1870년 네빌 가문의 라이벌 퍼시 가문의 후계자 헨리 퍼시에게 가문의 작위였던 [[노섬벌랜드]] 백작위를 돌려주었다. 랭커스터파를 몰아낸 공으로 노섬벌랜드 백작위를 받았던 워릭 백작의 동생 존 네빌은 이름만 그럴듯한 몬태규 후작으로 밀려났고, 기존에는 형 리처드의 반역 시도를 반대했던 존 네빌 또한 에드워드 4세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리처드 네빌은 후환을 두려워하며, 프랑스로 망명하여 [[랭커스터 가문]]의 [[앙주의 마르그리트|앙주의 마거릿]] 및 프랑스 왕 루이 11세와 손을 잡고 1470년 9월 잉글랜드를 침공했다. 존 네빌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에드워드 4세를 배신했다. 궁지에 몰린 에드워드 4세는 지지자들과 함께 10월 [[부르고뉴국]]으로 망명했는데, 용담공 샤를의 지원을 받아 1471년 3월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훗날의 [[리처드 3세]].]와 함께 런던을 탈환하고 4월 '''바넷 전투'''[* 짙은 [[안개]]로 인한 혼전이 펼쳐졌다. 원래는 리처드 네빌이 이끄는 랭카스터군이 크게 유리했으나 안개 속에서 리처드의 동생 몬태규 후작 존 네빌이 옥스포드 백작의 병사들에게 [[아군 오사]]를 저지르면서 배반이 터졌다는 외침이 돌았고, 랭카스터군은 그대로 와해되고 말았다. 리처드 네빌은 퇴각 도중에 요크군 병사들에게 걸려 죽었다. 존 네빌 또한 전사했다.]에서 리처드 네빌을 죽였다. 같은 날 헨리 6세의 왕비인 앙주의 마거릿이 외아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함께 상륙했으나,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격파당하고 랭커스터 왕조의 마지막 왕자인 에드워드는 피살되었다. 이로써 남아 있던 랭커스터 가문 인사들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처형되었으며 그 후 런던탑에 갇힌 헨리 6세를 죽인 에드워드 4세는 평생을 안전하게 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